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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 안전했던 약물이 가져온 비극과 교훈

by rimhi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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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혹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라는 약을 아시나요?

약대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약물일 텐데요. 

저는 이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이 약물이 가진 이야기를 나누며, 약물 안전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탈리도마이드의 시작 : '안전한 약'의 등장

 

출처 : 경향신문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진정제 및 임신 초기 입덧 치료제로 널리 사용된 약물입니다.

1954년 독일의 제약회사 켐리히(Chemie Grünenthal)에서 개발된 이 약물은 진정 효과와 입덧 완화 효과가 뛰어났으며,

특히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 '안전한 약', '기적의 약'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덕분에 탈리도마이드는 여러 국가에서 임산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극의 시작 : 기형아 출생

 

탈리도 마이드가 정말로 '안전'한 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출처 : 단비뉴스(https://www.danbinews.com)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사지가 기형적으로 짧거나 없는 아기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사람에게는 단 한 알만 먹더라도 기형아가 태어나는 부작용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탈리도마이드의 비밀 : 거울상 이성질체

 

탈리도마이드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그 분자 구조에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 두 분자 구조는 똑같아 보입니다.

이 구조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이 단 하나의 차이점이 효과를 나타낼지, 부작용을 나타낼지를 결정했습니다.

 

'거울상 이성질체'는 무엇일까요?

거울상 이성질체는 우리의 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은 같은 모양이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기도하듯 오른손과 왼손을 맞대면 거울에 손을 댄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둘은 같아 보입니다.

 

만약 우리가 손을 바꿔 끼울 수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내 왼손을 복제해 오른 팔목에 교체해 끼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가진 두 손과 같을까요?

당연히 다를 것입니다.

 

이렇게 바꿔 끼우게 되면 두 손 모두 엄지가 한쪽을 향하는 이상한 손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울상 이성질체'입니다.

 

다시 탈리도마이드로 돌아가보면,

탈리도마이드의 두 구조도 왼손(R 구조), 오른손(S 구조)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R 구조가 우리가 원하는 효과인 진정, 입덧 완화 효과를 나타냅니다.

 

문제의 부작용을 나타내는 구조는 바로 S 구조인데요.

S 구조가 혈관의 생성을 억제해 태아의 사지 발달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겠습니다.

'약효를 나타내는 R 구조만 추출해서 약으로 만들면 부작용 없이 사용가능하지 않나?'라고요.

 

안타깝게도 그래도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R 구조만 추출해 약을 만들어도 간에서 S 구조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부작용을 나타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10,000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게 되었고,

이는 약물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 FDA와 프랜시스 켈시 박사의 결단

 

탈리도마이드는 여러 나라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미국에서는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FDA 신입 심사관이었던 프랜시스 켈시(Frances Oldham Kelsey) 박사의 결단 덕분이었죠.

출처 : 위키피디아

 

켈시 박사는 제약회사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승인을 보류했습니다.

1년 정도 계속 승인을 보류한 덕분에 탈리도마이드의 실체가 밝혀졌고, 미국 신생아들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켈시 박사는 그 공로로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이는 의약품 안전 규제의 중요성을 일깨운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현재도 사용 중인 탈리도마이드?!

 

출처 : 약학정보원

 

그럼 탈리도마이드는 영원히 퇴출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충격적이게도 탈리도마이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입덧 완화, 진정작용 이외에 다른 유용한 효과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었던 혈관 생성 억제 효과가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 부작용이 오히려 치료효과가 돼, 현재는 한센병과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탈리도마이드가 남긴 교훈

 

탈리도마이드는 약물 안전성 검증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사건 이후, 약물 부작용이 동물과 사람에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인식되었고,

현재는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훨씬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약물의 안전성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의약품 개발과 규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흥미로운 약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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